읽고

비행운 - 김애란

noravora 2025. 6. 25. 23:41

비행운 - 김애란

 단편 소설이 요즘 무척이나 좋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지 신기하다. 마음이 울렁거리는 이야기를 나도 쓰고 싶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

 선배로부터 2년 만에 연락을 받고 선배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방송국에 가는 미영. 방송국에 들렸다가 친구인 병만의 장례식장에 갈 생각이었지만, 에이디인 선배의 부탁으로 가게 된 방송국에서 맡은 역은 쫄쫄이 복장을 입은 푸트 파이터. 미영은 방송국을 빠져나와 장례식장을 가지 않게 된다. 그리고 떠올린다. 어릴 적 미영이 물에 빠졌을 때 구해준 병만을. 미영이 물에 빠졌을 때 살기 위한 몸부림을 치다가 병만의 팔에 상처를 입힌 자신을 떠올리는 동시에 준이 선배 또한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영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고 깨달아 흐느낀다.

 내가 받은 호의를 꼭 받은 상대에게 돌려주지 않는다는 말이 떠오르는 소설이었다. 병만이 나에게 해줬던 것처럼 나도 선배에게 베푼 마음이 나에게 상처로 돌아올지라도 또 누군가에게 내가 받고 상처를 줬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었다. 끊어지지 않는 고리처럼 그렇게 사람의 관계와 연결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소설을 다 읽고 눈 오는 날의 붉은빛이 떠올랐다. 그걸로 이야기를 적고 싶었다.

<벌레들>

 가진 돈이 부족한 신혼부부는 재개발 지역의 허름한 빌라로 성급하게 이사를 한다. 잦은 야근을 하던 남편이 집을 비운 날, 아내는 집안에 출몰한 흉측한 벌레를 죽이던 중 창턱에 뒀던 결혼반지를 떨어뜨리고, 만삭의 몸으로 두려움을 무릅쓰고 반지를 찾으러 철거 지역으로 들어갔다가 벌레들의 진원지를 발견하고, 그만 그 자리에서 놀라 쓰러지면서 양수가 터지며 살려 달라는 비명 소리와 함께 이야기는 끝이 난다.

 

나무는 자궁이 적출된 여자처럼 헤프게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비행운 - 벌레들 79p

 

 이 문장이 눈에 밟혔다. 그리고 그 나무 곁에서 양수가 터져버린 여자. 무섭고 끔찍하다는 생각. 벌레보다 어쩌면 더 무서운 것들이 느껴지는.

<물속 골리앗>

 소년은 건설 노동자였던 아빠가 돌아가시고 모두가 떠난 철거 아파트에서 엄마와 함께 삶을 이어가던 중 엄마마저 돌아가시게 된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로 도시가 물에 잠기자 소년은 뗏목을 만들어 철거 아파트를 탈출하지만 아무리 나아가도 눈에 보이는 것은 골리앗 크레인들의 윗부분뿐이다. 살기 위해 어렵게 크레인 위로 올라간 소년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누군가의 구조를 기다린다.

 

비행운 - 김애란

 

 소설의 처음 부분이 너무도 좋았다. 당도가 물러지던 날들이라니. 표현을 듣자 뭔가 현재의 날씨는 추운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습하고 축축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택시 기사 용대는 기사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며 고된 삶을 이어가던 조선족 명화에게 반하여 프러포즈 후 결혼까지 한다. 둘은 언젠가 함께 중국에 가자고 했지만, 명화는 그만 위암에 걸려 제대로 치료도 못 받고 반지하 단칸방에서 죽게 된다. 집을 날리는 바람에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용대는 명화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가를 생각하며 명화가 죽기 전 녹음해둔 테이프를 들으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러니까 제 말은요. 그렇게 우연히 노래랑 나랑 만났는데, 또 너무 좋은데, 나는 내려야 하고, 그렇게 집에 가면서, 나는 그 노래 제목을 영영 알지 못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는 거예요.”

용대가 물었다.

“그럼 다 듣고 내리지 그랬어요.”

그녀는 나이답지 않게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그런데 감동적인 음악을 들으면요, 참 좋다, 좋은데, 나는 영영 그게 무슨 노래인지 알 수 없을 거라는, 바로 그 사실이 좋을 때가 있어요.”

“……”
비행운 -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146p~147p

 택시에 탄 손님과 용대가 나눈 대화이다. 노래 제목을 알 수 없는 노래라는 것이 내가 끝까지 알 지 못한 타인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져 좋았다. 나도 용대처럼 무슨 말일지는 모르겠으나 이해할 수는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녹음된 명화의 중국어 목소리를 듣고 메아리 마냥 소리를 내는 용대. 명화의 말을 따라 하듯 명화의 마음도 조금은 느낄 수 있기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득 느껴졌다.

<하루의 축>

 추석 연휴의 시작. 청소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기옥은 자신이 만든 음식을 채 먹지도 못하고 공항으로 향하던 중, 우편함에 있던 아들의 편지를 발견한다.

기옥은 남편이 먼저 죽고 아들 영웅을 잘 키워보려 하지만 영웅은 어학연수비를 모으려고 남의 택배를 훔치다 걸려 교도소에 가고 만다. 그때부터 스트레스성 탈모를 앓고 있는 기옥은 일을 끝내고 공항을 빠져나와 아들의 편지를 읽는다. 편지에는 엄마 사식 좀 이라는 다섯 글자만이 쓰여 있고 기옥은 가방에서 화장실 청소 중 버려진 마카롱을 꺼내 먹는다. 그리고 의자 위에 올려둔 두건을 잊고 추가 근무를 신청하러 공항에 가게 되고, 직장 상사에게 자신의 머리를 보이고 만다.

 

 이를테면 설에는 떡국이, 보름에는 나물이, 추석에는 송편이, 생일에는 미역국이, 동지에는 팥죽이 먹고 싶다는 식의. 그래야 장이 순해지고, 비로소 몸도 새 계절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는, 어느 때는 너무 자명해 지나치게 되는 일들이 말이다. 제사는 조상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지내줘야 했다. 기옥 씨는 음식으로 자기 몸에 절하고 싶었다. 한 계절, 또 건너왔다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시간에게, 자연에게, 삶에게 ‘내가 네 이름을 알고 있으니, 너도 나랑 사이좋게 지내보자’ 제안하듯 말이다.
비행운 - 하루의 축 178p

 

 

 하루에 축에 보면 기옥 씨 또한 타인의 모습으로 타인을 재단하는 부분들이 나온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구별할 수 있었고, 소득 수준이나 그런 것 따위를 기옥은 구별할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기옥의 머리가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이기는 하나 그것은 남들에게 눈짓이나 놀람을 불러일으킬만한 요소가 아니지 않은가 생각했다. 기옥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어쩌면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에 그렇지 않았을까. 나에 빗대어서 생각해 보았다. 나 또한 내가 예민한 부분을 가장 조심하곤 한다. 그건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싫어하기에. 기옥의 하루, 추석 바로 전 날의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함부로 타인을 생각해선 안 된다. 그리고 나조차도 때로는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멋대로 결정짓고는 하는데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좋은 문장들을 많이 만났다. 위에 문장도 그중 하나이고 하루의 축 중에서 특히 적어두고 싶은 부분이었다. ‘내가 네 이름을 알고 있으니, 너도 나랑 사이좋게 지내보자’라는 부분이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면서 반성하게 만든다. 내가 이름을 알고 있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있나?

 

<큐티클>

손톱 정리를 받은 나는 결혼식장으로 향한다. 관리받은 손이라는 걸 눈치채 주었으면 하지만 결혼식장에서는 누구도 나의 손에 관심이 없다. 게다가 들키고 싶지 않은 파란 블라우스의 겨드랑이 땀 자국은 부케를 받아내느라 들러올린 손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공개된다. 나눈 결혼식이 끝난 후 남산타워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에게 가는 길에 여행 가방을 준다는 신용카드 가입을 하게 되고 코에 땀이 맺힌 아주머니는 나의 정돈된 손을 알아본다. 친구와 만나고 나는 맥주캔을 열다 손톱이 찢어진다. 친구가 손톱을 발견하지만, 결혼식장과 달리 손이 발견되고 싶지 않은 나는 내가 한 것이라고 둘러댄다. 태국 여행을 함께 가기로 했던 친구는 여행을 가지 못한다고 말하고 나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친구에게 평소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친구에게 고백한다. 맥주를 다 마신 나와 친구는 밥을 먹기 위해 길을 나선다.

큐티클을 읽고 생각했다. 타인과의 비교, 그들 사이에 속하고 싶다는 마음. 나도 그러하다. 하지만 반면 생각해 보면 나는 외적인 것에 그러한 마음을 품는다. 가질 수 있는 듯해서 그런 걸까? 의문이 든다. 외적인 것은 변할 수 있는데 말이다. 더구나 나는 길가에 고개를 쏙 하고 귀엽게 내민 꽃에 나를 비교 대상으로 세우지 않는다. 꽃이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워도 나는 그걸 부러워하거나 닮고 싶어 하지 않는다. 꽃이 되고자 노력조차 않는다. 그저 나와 다른 타인, 나보다 예쁘다고 생각되거나 좋아 보이는 사람과 늘 비교한다. 그건 때론 물질이기도 하고 외모지상주의이기도 하고 계급이고 하다. 그렇지만 그런 외적인 이유로 타인을 판단할 수 있을까. 반면 내가 외적으로 채워진다고 해도 내가 그들과 같을까? 언젠가부터 생각했다. 자연을 닮고 싶다고. 그러면서 슬쩍 나도 자연이라고 우겨본다. 경쟁하거나 돋보이는 것에 현혹되기보다 살아있음에 존재한다는 것에 하루하루 버텨내는 걸 우선시하고 싶다. 그리고 이 마음이 흔들릴지언정 꺾이진 않길 바란다.

<호텔 니약 따>

서윤과 은지는 함께 동남아 여행을 가게 된다. 처음에는 무난히 여행을 즐기지만 점점 서로 안 맞는 부분들이 서로에게 걸리게 되면서 감정이 쌓인다. 호텔 니약 따에 은지가 묵자고 제안을 하고 서윤은 그것이 못마땅하기는 하나 호텔에 가게 된다. 은지가 니약 따에서 묵고 싶었던 이유는 죽은 사람 중 자신이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는데 은지가 아닌 서윤이 죽은 할머니를 보게 된다. 그리고 서윤이 은지와 말싸움을 하게 되고, 베트남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 다빈이 여행을 못 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운 거였어.”
비행운 - 호텔 니약 따 277p

 

 

 서윤과 서윤의 전 남자친구 경민의 대화 중 경민의 대사가 인상 깊었다.

다행히도 아직은 친구와 여행을 가서 싸운 적이 없다. 하지만 보름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낸 친구가 없다는 함정이 나에겐 존재한다.

 반나절 혹은 하루 정도 시간을 보내는 동안은 서로의 모습을 전부 알 수 없지만 여행이라는 특수 상황에 놓이면 의식주를 모두 함께 하거나 엿볼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편함이나 당혹스러운 감정들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소설 속 두 친구가 남은 여행을 잘 마무리하고 돌아와서도 인연을 이어갔으면 하지만 어찌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사소함에서 시작된 갈등. 그건 서로의 다름에서 끌렸던 두 사람에게 발생되었다. 생각해 보니 여행이 아니더라도 우리 삶에서 이런 갈등 상황은 쉬이 찾을 수 있지 않나 싶다. 타인과 잘 지내기란 참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잘 지내고 싶다. 언제나. 나는 요즘 내가 친밀하다고 느끼는 상대에게 나의 나태가 보였을 때 그 모습이 잘 받아들여졌어 면 하고 바란다. 나의 나태를 걱정하는 나태한 나라니.

 다시 소설로 들어가 보자면 할머니를 본 후 소윤은 은지에 대한 화를 참을 수 없게 된다. 돌아가시고도 폐지를 줍는 할머니. 요즘 또 하는 생각 중 하나인데 가난의 대물림, 계급이라고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소득 또한 벗어나기 힘든 사회적 구조가 있지 않나 싶다. 분명 열심히 살아가는데도 나의 부모의 그 부모의 부모의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은 쉽지 않은 듯하다. 모두 설렁설렁 살아가는 건 아닌데도 말이다.

 다르더라도 잘 지내고 싶다. 나는. 되도록 오래. 많이.

 

<서른>

재수를 해서 불문과에 들어가 졸업한 뒤에도 학자금 대출과 더불어 집안 사정으로 불어난 빚으로 허덕이던 수인은 전 남자친구의 권유로 불법 다단계 회사에 들어가게 된다.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팔아가며 절망적인 생활을 하던 수인은 예전에 일했던 보습학원 제자 혜미를 자기 대신 다단계 회사에 끌어들이고는 자신은 회사에서 나오게 된다. 결국 혜미는 자살기도를 하고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수인은 예전 재수 시절에 알고 지내던 언니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편지로 전한다.

비행운 - 김애란

 서른은 마음이 먹먹해지는 이야기였다. 제목도 그러하고 나의 불행을 나와 가장 비슷한, 또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줄 타인에게 전가하는 것이 너무도 무서웠다. 수인의 전 남자친구가 수인에게, 수인이 혜미에게 그러했듯. 나도 그렇진 않을지 생각했다. 무서웠다. 마치 거미줄에 걸려 있는 듯한 느낌. 길을 잃은 듯 막막한 기분이었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문구가 가슴이 남았다. 수인은 학원가에 아이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하지만, 나는 요즘 과거의 나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 그러니까 어린 시절에 나는 지금보다는 좀 더 근사한 어른이 되고 싶었던 거 같은데, 나는 결국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나로 지내고 있다. 과거에 나에게 조금은 미안하기도 하지만, 더 미안한 건 그때의 나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때보다 나은 게 하나 있다면 그때보다 아픔을 조금 더 겪었다는 점, 그걸 알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내가 되겠지만, 그렇겠지만 나는 지내고 있단다. 그러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