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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noravora 2025. 7. 8. 19:33

 무언가에 이끌리듯 장바구니에 책을 담고 구매했던 책인데 올해가 돼서야 책을 펼쳤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책의 내용을 짧게 설명하자면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장례식을 치르며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를 돌아보는 거라 말할 수 있겠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책의 시작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 문장만으로도 뒤 내용이 궁금하기만 했다. 독자를 사로잡는 첫 문장이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당연히 알지 못한다. 아버지는 알았을 테고 아버지 방식대로 위로했을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게 아버지식의 위로였다. 그 위로가 때로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대체로는 잘 먹혔다. (중략)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한 게 우리 아버지가 처음이라고. 어쩐지 아버지 말에 지금까지의 모든 설움이 씻겨 내리는 것 같았다고.

아버지의 해방일지 141p

 

영정 속의 아버지가 꿈틀꿈틀 삼차원의 입체감을 갖는 듯했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불렀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181p

 

 삼차원의 세상에서 사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을 납작하게 바라보고는 한다. 그 행동은 오히려 가까운 사람이었을 경우에 더 심한데, 이 대목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아는 아빠도 엄마도 분명 나도 모르는 시간이 있었고 나에겐 부모이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그들의 이름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일게 분명한데 나는 여전히도 이기적이게 나의 부모로 바라본다. 좀 더 통통하게 바라보고 싶다. 예전에도 했던 생각인데 사과를 떠올릴 때 사과 그림을 떠올리고는 하는데 잊지 말아야 한다. 사과는 둥글고 입체적이다.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 번만 와도 되는데. 한 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197p

 

장례식장에 자꾸 들리겠다는 사람들의 말이 나도 부담스럽지만 부러운 감정이 들었다. 단번에 끊어지지 않는 관계와 우리네 마음이 보이는 문장이었다고 느껴졌다.

 

 아리가 사람들이 없는 장례식장에 돌아가신 아버지와 단둘이 있게 된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아버지와 다정했던 날들을 추억한다. 아버지의 무등이, 누룽지가 그때 시간을 떠올리는 나(아리)를 통해서 나를 보았다. 미운 감정은 정이 있어서 생기는 게 아닐까? 애증의 더 큰 부분은 사랑이었으리라. 때문에 증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사실 아직도 어떤 감정일지 명확하진 않지만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어렴풋하게 느꼈었다. 죽음이 다시 살아나는 듯한, 그래서 어그러졌던 관계를 회복으로 들어서게 하는 순간을 말이다. 이병헌 배우님이 연기한 동석과 김혜자 배우님이 연기한 옥동을 보면서 그 순간을 본 듯도 했다. 어쩌면 살아있는 동안은 이루기 어려운 일일지도 몰랐다. 솔직히 말하면 죽음으로 인해 해결되는 모습들이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이면 불편해했었다. 그렇다도 잘못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냐며 어깃장을 놓기도 했었다. 근데 지내보니 죽음을 마주한 순간 우리는 사랑을 깨닫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마음이 놓이는 게 아닐까. 물론 아직 명확하진 않지만 이젠 더 이상 어깃장을 놓지 않는다. 다만 그런 순간이 오기 전 사랑을 깨닫고 회복이 되길 조금 더 소망한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아버지의 해방일지 249p

 

 소설 속 아버지는 빨갱이로 불리는 사회주의자였다. 그 속에 가려져 있던 아버지의 다양한 모습을 하나씩 보며 생각했다. 모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텐데 하나의 얼굴로만 상대를 대하고 있지 않은지. 때로는 나조차도 나를 하나의 틀에 가두지 않는지.

 

항꾼에,라는 말이 두고두고 참 좋았다.

(중략) 어쩐지 아버지가 여기, 함께하는 느낌이었다. 살아 있는 우리와 항꾼에.

아버지의 해방일지 263p

 

 항꾼에는 함께의 방언(경남, 전라)이란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소설의 마지막 장이다. 이 부분에서 눈물이 났다. 울고 싶지 않았지만 눈물이 났다. 쌓여온 것이 와르르하고 쏟아지는 기분이었다.

 

쉰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

아버지의 해방일지 267p 작가의 말

 

 작가의 말을 보았다. 반성주의자라는 작가님을 보며 나도 조금 반성을 해보았다.

 여담이기는 하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의 사랑하는’으로 시작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막연하게 글을 써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싶다는 것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나의 사랑하는’으로 시작하는 글을 적기는 했으나 지금 이와 같은 일기의 형식의 글을 적어두었다. 갈무리가 채 되지 않은 듯한 감정은 여전히 내 주위를 부유하고 있다. 떼어낼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고 나는 ‘나의 사랑하는’으로 시작하는 글을 여전히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나의 평생의 숙제로 남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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